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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주일예배 <개혁 신앙으로 거듭나는 교회> 정연원목사
글쓴이
: 정연원
날짜
: 2017-02-02 07:06:22
조회수
: 657
大阪敎會 主日禮拜 <2017年 1月 15日> 說敎 : 鄭然元牧師
* 題目 : 개혁 신앙으로 거듭나는 교회
* 聖經 : 로마서1장 17절
<표준새번역>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일본어 신공동역>
17. 福音には、神の義が啓示されていますが、それは、初めから終わりまで信仰を通して?現されるのです。「正しい者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18. 不義によって?理の?きを妨げる人間のあらゆる不信心と不義に?して、神は天から怒りを現されます。
<설교>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innovation/혁신/革新’ 이란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혁신’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여 관습, 조직, 방법들을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혁신이야말로 사회 전반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하는 사고입니다. 이것의 범주는 예술, 경제, 정부정책과 같은 것에서 적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년 개신교회는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합니다.
종교개혁운동(Protestant Reformation)은, 당시 로마 가톨릭의 체재와 신학과 신앙적 문제를 논박함으로써 교회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로 성서가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믿음만으로, 은혜만으로, 성서만으로!"(sola fide, sola gracia, sola scriptura)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개신교회가 이 의미있는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더, 오늘날의 우리들의 개인적 신앙과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개혁신앙의 정신을 재검토하면서 혁신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개혁을 주장하고 변화를 외치면서 그 선두에 서 있으면서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것은 ‘나’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과 신앙생활 전반에서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고 잘못된 것을 찾아 돌이켜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정한 개혁과 혁신의 정신은 남이 무엇을 잘못했냐! 하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돌아보는 운동입니다.
교회창립96주년을 맞이하는 오사카교회는 “개혁정신으로 거듭나는 교회”라는 표어를 정하여 한해를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기를 다짐합니다.
종교개혁의 기원과 발전은 사회와 함께 진행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매년 종교개혁주일을 중심으로 연간 몇 차례 종교개혁운동에 관한 말씀을 나눕니다. 특히 금년은 우리들의 주제인 만큼 여러 차례 이런 말씀을 나누게 될것입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당시 어떤 사회였으며 어떤 변화, 개혁을 하려고 했던가를 살펴보는 작업입니다.
종교개혁은 유럽사회를 넘어 세계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대변혁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를 넘어서 사회까지 변화시켰다는 점에서,종교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였습니다. 이 사건이 종교적 사건인 동시에 사회적 사건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건의 기원과 발전을 종교라는 좁은 시각에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망라한 넓은 맥락 속에서 살펴 보아야 합니다. 유럽의 변화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이 없었을 것이고,표현을 바꾸어보면,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근대적인 유럽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고, 또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요?
교회개혁을 위한 움직임은 교회역사에 있어서 항상 있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 직전에는 다양한 교회개혁 운동이 이뤄졌습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운동이 이런 교회개혁 움직임 중 가장 대표적이고 결정적인 것이기에 특별한 명칭을 사용해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시기는 일반역사에 있어서도 중세사회가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격변기였다는 점입니다. 당회 유럽 사회도 많은 변화를 가져 올 조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세유럽은 로마 가톨릭의 교권과 각 나라마다 가진 왕권, 즉 교회와 국가 간에 갈등은 있었습니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사회 위에 군림하는 두 개의 지도자로서 공생관계였습니다.
하나는 <민족주의>를 주장하면서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났는데, 하나는 전체 기독교세계에 대한 개별국가의 우선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각 나라의 민족주의가 강하게 자리하면서 교황의 영향력의 줄어들었다는 변화였습니다. 만일 이런 변화가 없었다면,‘마틴 루터’도 한 세기 전에 개혁을 부르짖다 순교한 체코의 ‘얀 후스’(Jan Hus)와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종교개혁의 원인(遠因)이 되었다면,종교개혁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중세 유럽에 기독교세계와 가톨릭교회가 대립하였고, 민족국가와 민족교회는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유럽이 근대유럽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정치적인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온 것은 아니었지만,적어도 자본축적을 통해 새로운 신분인 시민 즉 부르주와(Bourgeois) 계층이 등장했고,집단주의에서 벗어나는 개인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의 시작된 당시,유럽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신흥계층이 자기주도적인 신앙,즉 종교개혁운동의 정신인 ‘자기주도적’인 형태로 나타난 개신교의 주도세력이 되었습니다. 더구나,종교개혁은 신흥계층에게 걸 맞는 신앙유형을 제공하였을 뿐 아니라,그들의 삶의 양식에 걸 맞는 윤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신흥계층은 종교개혁의 주축세력이 되었고,그 결과 중산층의 신앙이라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신앙은 ‘교회의 신앙’이라고 하는 ‘집단주의적 신앙’에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확인하려는 개인적 신앙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신앙은 각 개인의 신앙 자체는 물론 그의 신앙스타일과 신앙인으로서의 생활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신앙은 개인이 스스로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믿고,실천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까지의 학문은 놀라운 업적을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학문적 엄밀성은 부족했습니다. 물론 ‘계몽주의’ 이후에 학문적 엄밀성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 되었지만,그런 태도는 이미 르네상스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신학연구를 통하여 바른 신앙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자들은 성경연구와 설교를 통하여 그런 바른 신앙을 확인하고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학문적 태도는 그 양상은 차이가 있지만,신학자와 신자 모두에게 요청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죤 칼빈(칼뱅)”은 교회의 직제를 목사, 교사,장로,집사라는 4중직을 내 세우면서,목사와 교사는 중복될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교사로서 혹은 신학자로서의 목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정신적인 운동이었지만,그것을 확산한 것은 바로 인쇄술이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지식적 종교’라는 측면이 강했기에, 인쇄라는 매체는 종교개혁 확산에 있어서 매우 적합한 매체였습니다. 종교개혁 문서, 특히 루터의 충격적이고도 획기적인 문서는 바로 이런 상황에 놓였던 당시 출판계로서는, 마틴 루터의 문서는 기대에 넘치게 보답을 하였습니다. 저서뿐만 아니라, 성경을 번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개인의 손에 들려지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새로운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대중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신문명을 선도적으로 활용하면서, 큰 효과를 거뒀다. 요즘 말로 표현 한다면,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종교개혁은 개혁적인 신앙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혁신적인 신앙운동(‘innovation/혁신/革新’)이었습니다. 종교개혁 문서는 새로운 문화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은 조각,성화 등 기존의 기독교미술을 거부했지만,동시에 그들에게 필요한 기독교미술을 확산시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삽화였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신앙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개인적 신앙의 특성이 강했습니다. 이런 특성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중요시했습니다. 인간됨의 핵심은 자기 소신을 선택하는 자유요 권리라는 점을 밝힌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종교개혁 내에도 다수파와 소수파가 갈등을 빚었다는 것을 설명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수파는 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종교 자유를 주장하였고,소수파는 종교자유를 제한하는 모순을 자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방금 말씀 드린대로 다수파와 소수파,혹은 주류(magisterial) 종교개혁과 과격한(radical) 종교개혁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다수파는 신앙의 차원에서는 가톨릭교회와 차별화하려고 했지만,체제의 차원에서는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협력하는 가운데 기독교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소수파의 지도자들은 ‘신앙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종교개혁의 생각에 따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고, 교회에 대한 이해 곧 교회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새로운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역사 속에서 이 개혁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가를 더 많이, 더 자세히 배우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개혁운동이었습니다.
즉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을 주목했고,새로워지는 과제는 실천해나갔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개혁세력도 변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운동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만 한다” 라는 그 시작의 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개혁은 교회의 개혁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의 개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역사와 상황을 살펴보면,
또다시 민족주의나 자기 국가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공존하는 세계와 사회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국가만을 먼저 생각하는 비기독교적인 생각, 즉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과는 거리가 먼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정치의 현장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나 이번 비선세력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들어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국민들이 이렇게 분노하고 있습니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가기 편하도록 부정을 하고 부정 축재를 해서라도 다음 세대 내자식, 자손은 잘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지도자에 대한 분노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 이 세상을 섬기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민중들의 삶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높이 달아 놓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를 내려 우리가, 내가 지고 이 세상으로 나가 섬기는 것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2017년 우리는 개혁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거듭나는 교인, 거듭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힘을 합하여 나아가십시다!
<기도>
사랑 많으신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 세우신 교회,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며 늘 새로운 개혁정신을 가지고 교회와 사회를 섬기고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앙과 행동력을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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